그녀 이야기

길고 긴 연휴

misfortune4 2013. 9. 22. 08:28



지구의 조명에 따라 도시는 다른 표정이 된다. 밤의 서울은 여전히 무언가를 주려 한다. 낮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 이도

환영받는 세계.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드러나지 않는 세계. 감출 수 있는 밤. 신분을 속이기 가장 쉬운 밤.


연휴는 고역이다. 

나는 쉬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주 많이 느슨해져서 괴로울 뿐이다. 긴장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남아도는 시간을 잠으로 채우기 위해 나를 다독였다. 

게으름은 천성적으로 나와 맞질 않는다.

억지로 자는 일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드는 괴로움에 비할바는 아니다. 

TV는 역겨운 것이 사실이고, 그 비위를 감당하기엔 내 속이 별로이다

영화도 이젠 믿음직스런 시대가 지났고 책도 정신의 싸움의 결과물이 처참해지곤 하는 요즘 삶에

사실 전혀 도움이 안되는 어떤 것들로  전락했다. 

와인마저 지금 이 속으로는 마실 수 없다. 

겨우 커피를 마시지만 그 조차도 울렁댄다.

정말 괴롭다.

새로운 위를 가지고, 단단한 비위를 가지고 살고 싶다. 


어젠 두 시간정도 밤거리를 혼자 걸었다. 오랫만에 아이쇼핑도 한다. 십여년전엔 집착수준이던 빈티지샵도 여기저기 힐끗대었다. 

이젠 빈티지가 트랜디한 것이 된지 오래다. 솔직히 매력이 많이 가지 않는다. 그냥 예쁜 옷이어도 좋겠다. 괜찮은 샵에서 옷을 입어보려다 말았다. 이번달엔 친구초청음식에 와인에 벌써 돈을 너무많이 써버렸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씀씀이가 너무나 한심하다.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비싼 와인을 사서 다 마셔버리는 나를 보면 죽이고 싶을 정도다. 내 벌이수준과 혹은 내 삶과 아무 관련이 없는 취미를 갖는 내가 너무 우습고 한심하다. 나는 계급의식이 없다. 그래서 더 한심하다. 나만큼 돈이 들지 않는 취미를 가진, 나보다 더 안정적이고 잘 버는 많은 30대가 있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내가 한심해보이는지 잘 느낀다. 통장잔고가 바닥이 나야 정신을 차리는 버릇은 도대체 언제 고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돈 몇푼들마저 불필요하게 느껴질때가 많다. 너무 거추장스럽고 어디로든 써버려야 기분이 좋다. 이것도 병인가. 견디기 어렵다. 꿈이 없는 돈.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한다는 목적이 섰을 때만 가치있는 돈. 그 외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부터는 그냥 한심한 놀이로 느껴진다. 내게 투자하고 투자돈 떨어지면 또 월급타고. 또 투자하고. 진짜 먹고 토하는 그 기분하고 많이 비슷하다. 그러니 최대한 남을 위해서 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근데 요새는 후배들을 위해 써도 감사함을 받지 못하는 시대이다. 그때뿐인 것이다. ... 그래도 그게 날 위해 쓰는 것보단 나은 것 같다. 나를 위해 그만쓰고 싶다. 나를 죽이고 싶을 때까지 와인을 마신 것 같다.

, 이제 정말 그만 마시고 싶다. 좀더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늘 있다. 그런데 뭘 어디서 해야할지 막막하다. 그만 써야 한다. 그리고 더 벌어야한다. 왜 벌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왜 써야하는지도 모른 채 쓰는것보다는 버는게 난것같다. 어떻게 벌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껴서 살아야한다. 돈을 아껴야한다. 낭비하는 일은 괴롭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 제발 정신좀차리자. 지금은 그 생각뿐이다. 이대로 살다간 파멸할지도 모르겠다. 두렵다. 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하지만 꿈이 없기 때문에 내 자신의 행동이 점점 주체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두려움이다. 바라는 삶이 없다. 바라는 삶이 이미, 내가 만들 수도 누릴 수도 없는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없다는 편이 편하다. 나는 바라는 삶이 있다. 그리고 바라는 삶대로 살지 못하도록 내 길을 조종했다. 그건 그 누가 한 일도 아니다. 바로 내가 스스로 한 일이다. 행복은 이미지이므로, 그것을 현실로 가져와 깨어버리는 어리석음을 겪지 말아야지. 하며 나를 방어한 순간들로 나를 버텨왔다.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내가 버린 것은 거의 전부이다. 나는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갖지 못했다. 남들과는 완전히 반대로 행동한 것이다. 자꾸 멀어지고 더 단단해지는 이미지, 오히려 더 간결해지는 어떤 것이 되어 나에게서 최대한 멀어진 가장 아름다운 어떤 장면으로 남을 때까지 내 꿈없는 삶을 소진하는 것이다. 나를 어리석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바라다니. 게으르고 태만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일하게 내가 노력하지 않는 부분에 이미 내 이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해 더는 슬퍼할 힘도, 의지도 없다. 아니 나는그것에 특별한 감정을 싣고 싶지조차 않다. 감정적으로 가장 자유로워 지는 때에,나는 완전한 폐인/거지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려운 것은 그 과정에서 모든것을 포기할것만같은 그런두려움이다. 벌써나는 그런 일정의 단계에있다고 느낀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정말모르겠다. 혼자 오래 있는 것이 이렇게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인지 몰랐던 것도 아닌데, 또 두렵다. 내게 느껴지는 내가 스스로 버겁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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