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

오빠가 이해되는 나이가 되었다

misfortune4 2025. 12. 19. 10:19

오빠를 이해하는 나이.


오빠가 나를 50대 초반에 만나줬으니까
지금 나는 48으로서

아 오빠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고 있다
이해한다기보다 사실 온몸으로 오빠를 안을때마다 느끼던 그런 것들을
몸으로 알겠는 기분이다

주말이면 쉬고 싶고
누워있고 싶고
생명체를 안고 자고 싶다

그런데 젊은 애인이였던 나는
매번 나가자고 조르고 삐지고 그랬다

우리만의 반지하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같이 잠도 잤지만
나는 사실 이 매일같이 어둠속에 자는 지하를 나가고 싶었다

거리에서 오빠와 손잡고 활보하고 싶었다

이거봐
우리를좀봐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자가 내 남자야
우리는 이렇게 너무 사랑해
사랑한다고
세상사람들아 우리 되게 멋지지 않니?

하지만 오빠는 술이 취하지 않고서야
그 모든걸 꺼렸다
그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내 감정이 정당하고 생각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삐지고 화내는 것으로밖에 풀지 못했다
아 술도 한몫했다
그 술에 대한 비용 때문에
우리가 멀어지도 했다

오빠는 이제 60대가 되었겠구나

나는 흰머리가 너무 늘어서 염색을 하지 않으면
심각할정도가 되었어
생각보다 빨리 늙어버렸고
몸도 아프게 되었고
살도 많이 쪘어
꾸미지도 못하게 되었어

지금 우리가 만나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야
오빠가 지금 내 모습을 본다는게 끔찍해
나는 오빠를 볼수 있기를 바라지만
오빠가 나를 보기를 원하진 않아

죽기 전 버킷리스트에
우리 같이 겨울에 후지산을 등반하자고 했었는데
그 산이 곧 폭발할지도모른다는 기사를 봤어


버킷리스트는
이룰수없어서 
소중한건가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
이뤄질수없다는걸 맘속으로 안다고 해도
기분이 차올라

우리가 같이 그런말을 나눴던 때
우리 같이 나중에 꼭 뭐뭐뭐 하자
라고 했던 그런 것들이
헤어질 당시에는 서글펐고
지금은 슬프면서도 따뜻해져

지금은 왠지 슬픈게 따뜻해
따뜻한 것과 슬픈 것이 아주 깊이 연관된 기분이야
슬플 때 눈물이 돌아서 그런가
온몸이 눈물을 짜내기 위해 뜨거워져서 그런가

나는 점점 슬픔을 느끼지 못할까봐 두려워
나는 강팍하게 살고싶지 않아
그런데 아주아주 나쁜 개념이 내 슬픔을 자극하기도 해
그게 되게 안좋은거야
나쁜건 맞서 싸워야하는게
그게 슬퍼서야 되겠어!

할아버지가 됐을 오빠를 멀리서나마 보고 싶다
절대로 나를 보이지 않고
내가 사랑스러웠던 기억만 
내가 망가졌을때 동정이라도 했던 기억만


동정도 안가는 상태까지는 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