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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꿈과 행복한 꿈

아직도 죽음은 무섭다. 금요일밤엔 아주 무서운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모두 천천히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꿈이었다. 다리에서부터 붉은 피가 생성되고 온몸이 시뻘개지며 결국 경직되어 죽어갔다. 나는 백신주사맞는 줄을 선 채로 시체들이 즐비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새벽에 깬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오늘은 잠시 낮잠이 든 사이 강아지꿈을 꾸었다. 첼시라는 콜리 강아지 였는데 아랫집 사는 아이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매우 고급스러운 브라운+흰+검 털을 휘날리는 아주 아름답고 우아한 강아지였다. 다견가정인 아랫집은 강아지들을 잔뜩 데리고 왔고, 우리집 고양이들과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그 첼시라는 아이는 나만 졸졸 쫒아다녔다. 아랫집 주인은 첼시는 아무사료나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가 주는 고기나..

그녀 이야기 2021.08.22

Lean on me

자살. 언제나 힘들때마다 생각했던 것. 나의 도피처. 안식처. 비겁하고 두렵고 나약한 결정. 야근이 반복되고 내가 나를 견디기 어려울때마다 빠지는 중독같은 생각. 또하나 오빠의 손. 손을 잡고 싶은 유일한 타인. 상상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그 마찰의 순간.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언제나 타인은 불쾌하니까. 오빠손잡고 걸으면 나는 죽음으로부터 도망갈수있을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그의 따뜻하고 크고 꽉 쥔 느긋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고 강한 손.

카테고리 없음 2021.08.20

삶이라는 괴로움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이토록 무기력해진걸까. 내 주제에 이정도 사는 것도 감격에 겨워야하는걸까. 그 와중에 매일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본다. 통장 잔고를 걱정하는 주제에, 내가 할 일인가? 나는 어딘가로부터 도움이 올꺼라 허황된 기대를 하기도 한다. 나는 왜 허황된 길을 가게된 것일까? 그것이 허황된 것임을 알면서도 왜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죽고만 싶다. 그러다가도 행복해지고 싶다.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 가운데 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난 제대로 살지 못한 댓가로 누군가가 요구하는 것을 해내기 위해 겨우 삶이라는 틀을 갖추고 있다. 회사가 원하는 일, 고양이들이 내게 원하는 일, 부모가 내게 원하는 일. 그것을 맞춰..

그녀 이야기 2021.08.15

덥고 힘든 날들

배란기에 무더위에 경제적 어려움에 아무런 기운도 없고, 내가 먹고싶은 걸 사먹을 수도 없고, 아이들 캔과 사료와 모래와 장난감은 어느정도 사놓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분.. 졸리고 기운도 없고 눕고만싶고, 에어콘을 틀때마다 관리비폭탄맞을 걱정에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그 와중에 아이들은 놀아달라고 간식달라고 보채고, 누워있는 나를 앙앙 물어대며 자꾸 깨웠다. 나는 힘들고 불안하고 귀찮아서 이것들을 다 쪼까내야겠다는 등 못되고 악랄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하이톤의 여자목소리들 나를 쳐다보는 아저씨들 할아버지들 다 도끼로 찍어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내 속엔 잔인한 방어본능이 숨어있다. 배란기에 훨씬 심해지는 공격성. 여전하다. 하나도 나아지질 못했다. 더이상 욕하..

그녀 이야기 2021.07.20

주말

와인끊기 돈도없다. 금요일엔 처음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너무 힘들었다. 아직도 나에 대해 할말이 남아있다니, 신기할따름이었다. 게다가 울기까지. 나는 마치 나에 대해 연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내 자신이 놀라웠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낸다는 건 힘든일이다. 나는 그 이후 아무것도 할수없었다. 단비병원은 다녀왔다. 병원엔 다리가 아픈 무굽이가 있었다. 수컷놈들은 한시도 가만있으려하질 않는다. 먼로는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음악도 느끼고 늘어져있기도 하는데 단비, 니니, 단밤이는 먹는것과 사냥놀이만 수시로 밝힌다. 왜그럴까? 챗베이커도 남자인데 김엄지의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를 읽었다. E라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a,b,c,d라는 동료들이 등장한다. 그는 처음부터 대문자 E였다. ..

그녀 이야기 2021.07.11

가족이라는 감옥

지금의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는 너무 달라서 화를 낼수조차 없다. 나는 마치 밀양의 전도연과도 같은 처지에 처한듯하다. 내가 나의 주치의에게, 이제 나를 아프게한 모두에게 화도 나지 않고 과거의 어떤 기억도 나를 아프게하는 것을 지나간듯하다도 얘기했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를 대할때마다 벽에 꽉 막힌 듯 하다. 그녀는 나를 여전히 같은 상처의 위치에 데려다놓는다. 나는 여전히 거기로 들어가야한다. 하지만 더이상 울고 불고 하지 않는 것 뿐이다. 나는 그럴만한 반응을 하지 않는 법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그녀의 강도도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나는 확실히 고양이를 키우고나서 좋아졌다. 고양이들은 나를 순화시켰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가 보드랍고 꼬순내가 나는 고양이들을 끌어안고 부빌생각을 하면 때론 ..

그녀 이야기 2021.07.04

고양이의 인내심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바깥온도보다도 훨씬 덥다. 왜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밤에도 온도계는 27도를 가리키고 중앙냉방을 하기때문에 밤중과 새벽엔 에어콘이 거의 가동되질 않는다. 얇은 나시하나만을 입고 이불도 안덮고 자지만 땀이 흐른다. 아무리 더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털옷도 벗을 수 없는 고양이들은 화장실이나 신발장 바닥에 몸을 붙여 누이고, 몸을 그루밍하며 더위를 달랜다. 출근 후부터 퇴근때까지의 낮시간 동안은 밤보다도 훨씬 더 더울텐데 아이들은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내가 돌아와도 짜증한번 내지않고 내 다리에 몸을 부비며 꼬리를 파르르 떤다. 반가움의 표시 아이들의 인내심에 새삼 감탄한다 고양이는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을 견디며, 의외로 사회적 동물인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

고양이일지 2021.06.29

마리아주

오빠랑 헤어지구 음식이랑 술을 사람이랑 같이 먹는 일이 연례행사가 되고나자, 마리아주란 말이 나에게 점점 의미가 없어진다. 커피도 아무 곁들임없이-쿠키나 초콜릿, 빵 따위- 홀로 즐기는게 좋고 술도 아무 안주 없이 그냥 먹는게 좋다. 뭔가 같이 먹으면 부대낌을 느낀다. 혼자 이런것들을 마시다보면 함께 곁들여 마시는 풍부한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중독의 증세만이 찾아오는구나. 서글프다.

그녀 이야기 2021.06.24

소나기

퇴근하다 갑자기 소나기를 맞았다.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쳤다. 하늘이 뚫리기라도 한 듯 쏟아지는 비가 마구 요동쳤다. 온 몸이 젖고 신발이 질퍽였다. 우산은 소용이 없었다. 얼마전 집에서 밤에 천둥번개가 쳤을 때 아이들(먼로제외, 수컷 세놈)이 우다다 도망쳐 화장실로 기어들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건물 어귀에 들어가 비를 피하다가 아이들이 있는 김포는 괜찮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아이들의 몽글몽글한 털이 그리워졌다. 미칠것같은 비바람 속에서 추위를 느끼자 따뜻한 아이들의 털과 냄새들이 사무치게 그리워 한참을 서 있었다. 어서 집에 가고 싶지만 집에 갈 수 없는 상태 아이들은 냥냥대며 비를 창문으로 구경하며 나를 기다리겠지 하지만 나는 옴짝달씩할수가 없고, 소나기라지만 좀처럼 지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

그녀 이야기 2021.06.23

김포생활 1년째

여기 구래동에서 내 취향에 맞는 곳은, 내가 좋아하는 블랑 드 누아 샴페인 중 3만원대의 저렴한 와인을 파는 이마트 쫄깃한 치아바타, 버터소금빵, 결이 살아있는 크루아상 따위을 파는 작은 빵집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다-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신도시 특성상 뜨내기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우후죽순 상가들이 들어서기 때문에 그만큼 폐업률도 높다. 1년 사이에도 많은 가게들이 바뀌었으니까. 이 못가본 카페는 정말 좋은 스피커를 장착한 곳이고, 길을 가다 들으면 한번쯤은 발길을 멈추게 할만한 선곡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김포에서 샹송이 나온다니. 90년대 가요나 요즘의 보이그룹 걸그룹들 노래가 시끄럽게 울려펴지는 곳에서 말이다. 나는 저 카페에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일단 너무 작고 손님이..

그녀 이야기 2021.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