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내 이름도 몰랐다. 유일하게 종로에서 이뤄진 한 연말 모임에서 그는 술을 마시다말고 갑자기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무렵 그는 이미 20대 젊은 아이들에게 애정공세를 받고 있었고 아이들의 도를 넘는 무례한 행동에도 어색하면서 정색할줄 모르던 그는 그저 아무 제스쳐도 없이 참고 있었다. 한예종에서 있었던 사건은 정말 우스웠다. 내가 10여년간 본 그 사람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요즘 그 사람이 내 꿈에 많이 나온다. 커다랬던 머리, 약간의 장발, 트랜치코트, 구부정한 걸음. 어두운 기운, 나른한 표정, 날카로운 눈매. 무엇보다 사람을 대놓고 관찰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 사람은 유일 무이한 사람이었다. 내가 영화에 빠지게 된 것은 그 사람이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