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10

나와 닮은 사람

나는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자신의 삶과의 단절이자 삶이 맺어주는 관계의 단절이다. 죽음은 내가 살면서 접촉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킨다. 나는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을 사람들에게 주장할 생각은 없다. 사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행복하게 죽고 싶다. 행복하게 죽고 싶어서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더 이상 살아가지 않기로 숙고하여 신념을 가지고 결정했을 때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죽..

그녀 이야기 2022.07.21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배란은 언제끝나나

지난 토요일 밤 불을 켠채 아이들 놀아주고 저녁식사를 주고 야구 올스타전을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곧 생리를 하게됨을 아는 배란기 증후군 시기엔 언제나 예민해지고 사람냄새만 맡아도 집에 와서 토를 하고 그래서 손수건에 늘 라벤더 오일을 뭍히고, 마스크에 묻혀가며 버티고, 음식을 먹자마자 바로 화장실에서 토를 하고 잠이 많아지고 눈물이 많아지고 남자도 그리워진다 꿈에서 막 아무 남자나 만나서 집에 들여 자는 꿈을 꾸었다 어린 남자애들에게 집단으로 강간당하는 꿈도 꾸었다 경찰에 신고해놓고, 즐기고 상상했다. 꿈에서의 나는 정말 한심했다. 일어나니 고양이 4마리가 눈꼽이 낀채로 냥냥대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꿈을 오래 꾼건지, 꿈에서 가위를 눌릴 때 하지마 내몸에 손대지마 하면서 소리를 질렀으나 나오지 ..

그녀 이야기 2022.07.17

평온하고 싶다

평온할 수 있었으면 가난한 집 밖의 물건들을 가지고 오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을 가난하지 않게 만들고자 했으면 텅빈 냉장고 텅빈 생필품장 텅빈 사료통 다마신 와인병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것들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본래 좀더 본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서서히 변질되고 있다 그것이 나의 그나마 남아있던 평온한 기질마저 빼앗아가고 있다 싼거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물건에 집착하는 거다 하나를 사도 질 좋은 거 그 만족감으로 몇주도 버티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저렴한거 많이들여놓는 거로 만족하려는 게 있다 그거 진정한 만족이 아닌데 그저 불안을 잠재우려는 행위일 뿐인데 나이가 들면 돈이 좀 있어야하는구나 하고도 느낀다 많은 것이 안정적으로 구비되면 나는 지금보다는 집착이 덜 해질까? 잘..

그녀 이야기 2022.07.14

십오초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

그녀 이야기 2022.07.07

헤어질 결심.. 뭔 거지같은 기분

되게 오랜만에 직장사람들하고 기회가 있어서 극장이란 걸 갔다. 영화보는 사람들이 싫어서 극장도 연례행사가 된지 오래되었다. 나는 대체 사람한테 뭘. 그저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나는 영화는 개인적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고 내가 영화라는 걸 경험한건 극장이 첨이었으니까 어쩌면 나에게 영화는 공공적인 것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란 걸 직장사람들하고 봤다. 박찬욱 감독은 어쩌면 이리도 봉준호랑 같이 불려짐에도 이리 다를까? 그는 완전히 영화를 잘못이해하고 있는 영화광일지도 모르겠다. 그를 첨 만난건 아트시네마에서 브뉘엘 회고전을 할때였다. 아이처럼 빈 앞좌석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괸채 흥미있게 지켜보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분명히 브뉘엘에 매료된 사람이었다. 헤어질 결..

영화 2022.07.05

관계

나름 가까웠다고 느낀 거의 모든 관계가 끊어질 위기에 처한듯하다 어떤 심리학자는 느슨하게 여러 사람들과 연결된 것이 좋다고 한다 오히려 멀다고 느낀 사람에게 더 큰 도움을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여성은 왜이렇게 가까운 관계에 집착하는 걸까 길가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에 싸인다 예쁜 아기를 보면 만지고 싶다 늙고 추한 행동을 일삼는 어른들 입만 동동뜨는 시끄러운 여자들 눈깔과 입술을 뽑아 발로 밟아터트리고 싶다 예쁜 아이가 혼자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두 가족과 있다 아이는 가족에게서 나오니까 말이다 예쁜고 순수한데 혼자있는건 길잃은 새끼길고양이 밖엔 없다 사람들과 관계유지 자체를 하고싶지가 않다 내가 왜 그들을 위해 노력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조금도 잘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그녀 이야기 2022.06.27

비오는소리

강하늘이 나오는 드라마 인사이더를 보다가 아 교도소에도 비가 오는구나 아니 교도소에만 비가 오나 좋다 저렇게 비오는 소리를 얼마만에 들어보는건지 고수들은 여유가 있게 비정하고 하수들은 여유가 없게 비정하구나 강하늘은 참 연기를 잘하는구나 마스크가 참 좋구나 자신을 잘 가다듬는구나 자신을 잘 가다듬는 사람들은 뭔가를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다 우리 고양이들이 늘 아무도 보지 않아도 한마리의 적이 없어도 자기 침으로 온통 온몸을 구부려대며 요가쇼를 하며 그루밍을 하듯이 언제나 준비된 존재들은 빛이 난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평생 준비만 하다가 늙어 죽어가는 중이다 묘르신의 기분이랄까 평생 그루밍해야하는, 예민한 고양이로 태어났으나 아무도 날 봐주지 않고 아무도 더는 날 사랑해주지 않으니 지..

그녀 이야기 2022.06.18

눈깔 꼬라지 하고는

아주 아주 아주 오래된건데 길거리에서 날 쳐다보는 인간들의 눈깔을 찔러 터트리거나 뽑아다가 발로 짓이기거나 다 모아서 지옥불에 던지거나 하고 싶었다 왜냐면 너무 징그러워서 뭘보는지 그 눈깔로 뭘 생각하는지 내가 입는 옷 내 차림새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 너에게는 다른 느낌이니까 나는 좋은데 너가 보면 기분이 나빠 여기가 외국이면 발가벗고 다녀도 누구하나 훑어보지 않을까 정말 그럴까 꼭 내몸이 아니어도 레깅스를 입은 여자의 엉덩이 보일듯한 큰 가슴 치마입은 남자 튄다는 말 자체가 가진 대체 튄다는 말을 만든 사람의 뇌는 그럼 모두 그 지겨운 차림새를 하란 말이야? 대체 옷이 왜 대체 생각이 왜 눈빛은 왜저래 동태눈깔을 한 주제에 잘도 보네 어쩜 꼴리는건 그리 잘 보는지 니 꼬라지나 보시지 생선을 구우면 눈깔..

그녀 이야기 2022.06.17